지난 글에서 시험이 없었던 초등 6년에 대해 적었습니다. 글을 발행한 다음에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것이 제 기억의 한 단면이 아니라 한국의 정책이 만든 좌표였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글을 닫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본 글은 그 과정에서 모은 학술 자료와 정부 자료를, 학부모께서 한자리에서 읽으실 수 있도록 시간 순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결론부터 적겠습니다. 한국 초등 영어는 1997년 처음 정규 교과로 도입된 이후, 단 한 번도 정규 시험 과목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시험 없는 6년은 1988년생 이후로 초등학교를 다닌 모든 한국인의 공통 좌표입니다. 28년이 지난 지금, 2025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신 부모님께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좌표입니다.
왜 이 질문이 필요했는가
지난 글의 메시지는 시험이 없는 시기에야말로 시작점을 잡아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참이어야 합니다 — 초등 영어가 시험이 없는 과목이라는 것이 어쩌다 그 시절에만 그랬던 일이 아니라, 구조적 사실이어야 합니다. 만약 어느 시기에는 시험을 봤다거나, 2025년부터는 시험을 본다라면 글의 메시지는 그 시기에만 해당하는 좁은 권유가 됩니다. 그래서 시험 없는 6년이 한국 초등 영어의 28년 역사 안에서 어떤 좌표였는지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어떻게 모았는가
본 글은 두 종류의 1차 자료만으로 사실을 정리했습니다. 신문 기사·블로그·위키류는 일체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KCI) —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 자료
- 정부 1차 자료 — 교육부 고시 원문,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법령 원문
각 인용 옆에 링크를 함께 두었고, 글 끝 출처 섹션에 다시 한번 정리해 두었습니다. 본 글의 모든 사실 진술은 위 두 종류의 자료 안에서만 확인 가능합니다.
이 글은 정책 문서와 학술 자료에 한정해서 사실을 정리한 글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평가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1차 관찰 — 즉 각 학교의 수행평가 비중과 방식 — 까지는 다루지 못합니다. 이 한계는 글 마지막에 다시 짚겠습니다.
초등 영어 28년 — 시수와 정책의 변천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7년 3월 — 초등 3학년에 영어가 정규 교과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주당 1시간이었습니다. 이재희(2019)에 따르면, 도입 당시 원안은 주당 2시간이었으나 영어 담당 교사 확보와 연수 기간을 고려해 1시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1997~2000년 — 초등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계적으로 영어 도입이 완료되었습니다. 3·4학년은 주 1시간, 5·6학년은 주 2시간 체제로 정착되었습니다(이재희 2019).
2008년 11월 — 영어과 시수 확대 정책이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김성연·이소영(2008)에 따르면 3·4학년 주 1시간 → 2시간, 5·6학년 주 2시간 → 3시간으로의 확대였습니다. 시행은 2009년 이후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초등 3학년이 된 2010년은 정확히 이 시수 확대가 막 시행된 직후였습니다. 즉, 저는 1997년 도입 이후로 가장 많은 영어 수업 시간을 학교에서 받은 첫 세대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수로 받은 결과가 중학교 1학년 영어 시험 60점이었습니다.
2014년 3월 — 공교육정상화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법률 제12395호)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이 다음 사건의 근거가 됩니다.
2018년 3월 —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심영숙(2018)에 따르면 이 조치는 학교 정규 교과보다 앞선 선행교육 금지를 명분으로 했습니다. 즉, 초등 1·2학년은 정규 교과로도 방과후 수업으로도 영어를 배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19년 3월 26일 —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법률 제16300호)이 공포·시행되었습니다. 개정 법률 제16조 제4호로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을 적용 배제 대상에 명시함으로써,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이 다시 허용되었습니다. 시행 약 1년 만의 번복이었습니다.
2022년 12월 — 교육부 고시 제2022-33호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되었습니다. 초등 영어과는 파닉스 비중 확대가 핵심 변화였습니다.
2025년 3월 —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초등 3·4학년부터 단계적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2026년 3월에 5·6학년까지 확대됩니다(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28년의 변화 속에서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았다
위 연표를 정리하면 한국 초등 영어 정책의 28년은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재희(2019)의 분석에 따르면 1997년 이후 5개 정부에 걸쳐 17개의 초등 영어 교육 정책이 실시되었고, 교육과정은 6차례 개정되었습니다. 시수는 주당 1시간 → 2시간 → 다시 흔들림을 거쳤고, 방과후 영어 수업은 허용 → 금지 → 약 1년 만에 재허용이라는 흐름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흔들림 속에서 단 한 가지는 일관되었습니다. 초등 영어는 1997년 도입 이래 단 한 번도 정규 지필 시험 과목으로 편성된 적이 없습니다. 학교마다 수행평가와 진단평가가 운영되긴 했지만, 중·고등학교처럼 학기말 정규 지필 시험으로 점수가 매겨지고 그것이 누적되어 진학에 영향을 주는 형태의 평가는 28년간 한 번도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1997~2000년에 초등학교에 다닌 1988년생부터, 2025년 3월에 초등 3학년이 되는 2016년생까지, 시험 없는 6년은 모두에게 동일한 좌표입니다.
지난 글의 시험 없는 6년은 제 한 사람의 회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영어를 초등 정규 교과로 도입할 때 함께 설계한 구조적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28년이 지난 지금도 그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이 글이 다루지 못한 것
본 글은 학술 자료와 정부 1차 자료에 한정한 정리입니다. 다음 세 가지는 다루지 못했습니다. 학부모께서 글의 결론을 받아들이실 때 함께 인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각 학교의 수행평가 비중과 방식은 학교마다 다릅니다. 본 글이 정규 지필 시험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국가 수준의 통일된 평가 체계가 없다는 뜻이지, 학교 현장에 어떤 평가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녀가 다니시는 학교의 수행평가 운영 방식은 학부모께서 직접 확인하셔야 합니다.
둘째, 시수와 학습 결과의 인과관계는 본 글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시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제가 영포자가 되었다고 단정할 자료를 본 글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시수의 환경에서 잘 해낸 학생들도 다수 있습니다. 본 글의 결론은 시수의 효과가 아니라 시험 없음이라는 정책적 사실에 한정됩니다.
셋째, 사교육 시장의 변화는 본 글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학교 영어가 시험이 없는 동안 학원·과외·영어 유치원 시장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뤄볼 만한 주제입니다.
넷째, 본 글은 운영자가 직접 측정한 1차 데이터에 기반한 글이 아닙니다. 기존 학술 자료와 정부 자료를 학부모가 읽기 어려운 형태에서 읽기 쉬운 형태로 옮긴 정리 글입니다. 시험 없는 6년이 우리 회원 학부모 중 몇 명이 이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같은 질문에는 본 글이 답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글은 운영자가 직접 측정값을 모은 다음에 따로 쓰겠습니다.
그래서 — 학부모께 다시 드리는 한 가지 권유
지난 글의 끝에 시험이 없는 시기에야말로 방향을 잡아줄 어른을 찾아주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이번 글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그 권유의 근거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학부모께서 학교가 알아서 가르쳐 줄 것이라고 기대하셔도 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다. 초등 영어는 그렇지 않은 영역에 속합니다. 1997년 도입 당시 주당 2시간이 필요한데 1시간으로 시작한 정책이었고, 28년이 지난 지금도 시험을 통해 학습 도달도를 점검하지 않는 정책입니다. 이것이 정책의 잘못이라거나 학교의 태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설계된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설계된 영역에서는 학교가 끌어주는 만큼만 따라가는 자녀와 가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자녀 사이에 6년의 시간이 누적됩니다. 그리고 그 격차가 중학교 첫 영어 시험에서 60점과 90점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16년 전의 저처럼요.
그래서 다시 한번 권해드립니다. 시험이 없는 6년은 학교가 보장하는 6년이 아니라, 학교 위에 가정이 무엇을 얹느냐가 6년 뒤에 드러나는 6년입니다. 그 6년이 우리 아이의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1997년 이래 한국 초등 영어 정책 자체가 만든 좌표라는 사실이, 학부모께서 우리 학교는 왜 영어를 잘 안 가르치지라고 답답해하실 때 학교의 문제가 아닌 곳에 답이 있다는 방향 전환의 단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학원이든, 과외든, 가정 학습이든 — 학교 위에 무엇을 얹을지를 정하는 일이 시험이 없는 6년 동안 학부모께서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출처
본 글에 사용된 자료를 한 번에 정리합니다. 모두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또는 대한민국 정부 1차 자료에 해당하며, 클릭하시면 원문으로 이동합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KCI)
- 이재희 (2019). 초등영어교육 실시 이후 초등영어 교육정책과 교육과정 분석. 경인교육대학교 교육논총 39권 1호, 185-204. → KCI 원문 페이지
- 김성연·이소영 (2008). 초등영어 시수 확대에 대한 교사와 학습자 반응. 영어교육 63권 4호. → PDF 원문
- 심영숙 (2018).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금지 정책에 대한 고찰. 초등영어교육 24권 3호, 31-50. → KCI 원문 페이지
정부 1차 자료